절도 (법의 통일적 해석 vs 형법의 독자성) [형법 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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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같은 상황으로 여러 재판에서 싸우기도 하고 (민사-형사), 다른 법에 규정이 존재해 이를 참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다 같은 법이므로 통일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각각의 법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별개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된다.

 

죽은 사람의 재물, 점유

  1. 채무자 갑은 채권자 을과 산에서 말다툼을 하던 도중 을을 죽이게 되었다.
  2. 갑은 일단은 집으로 도망갔지만, 3일뒤 을의 시신이 있던 장소로 다시 가게된다.
  3. 이미 죽은 을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가지게 된다.

이미 갑은 을을 죽였기 때문에 살인죄가 성립된다. 이때 쟁점이 되는 부분은, 이미 죽은 사람의 지갑에서 돈을 가져간 게 절도인가, 아니면 점유이탈물횡령인가이다.

한마디로 이미 죽은 사람의 점유를 인정 할 것이냐는 문제이다.

 

민법에서는 사람이 사망하자마자 즉시 상속인에게 재산이 상속되고 (소유권 이전) 점유 역시 동시에 이전된다.

제997조(상속개시의 원인) 상속은 사망으로 인하여 개시된다.

제193조(상속으로 인한 점유권의 이전) 점유권은 상속인에 이전한다.

그렇다면 민법에 따라서, 을이 죽음에 이름과 동시에 지갑의 점유는 을의 상속인에게 이전되고, 갑은 타인 점유의 타인 재물을 절취했으므로 절도인가?

 

하지만 반대로, 점유는 "사실상의 지배"를 의미하고, 사실상의 지배는 이를 하고자 하는 의사 (점유설정의사)가 필요하다. 실제로 지갑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상속인이 과연 사실상의 지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는 형법과 민법, 각각의 법들이 성격이 달라서 그렇다. 다음의 문제를 살펴보자.

<우리 집에 있던 나무가, 벼락을 맞아 쓰러져 옆 집 자동차를 박살낸 경우>

형법에 의하면, 나무가 벼락을 맞아 쓰러지는 것은 나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천재지변)

따라서 타인의 재물을 파손한 것에 대해 나는 형사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반면 민법에 의하면, 어찌되었건 타인의 재물을 파손한건 나의 물건이므로, 내가 자동차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

 

민법은 대표적인 사법으로, 개인간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공평하게 누군가 손해를 봤으면, 누군가는 이를 배상해야 한다.

반면 형법은 대표적인 공법으로, 국가와 개인(범죄자)사이를 규율하며, 현재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추구하는 가치이다. 이에 엄격한 인과관계에 따라 그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민법에서 사망과 동시에 상속-점유가 이어지는 이유는 위 과정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 재산의 소유,점유에 대한 공백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복잡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려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민법의 관점은 "사실적 지배"라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고, 사실상의 상태에 따른 형법의 독자성을 인정하여 점유를 부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와는 별개로 특이하게 대법원에서 사망 후 3시간 경과시에는 생전 점유를 유지하자고 보는 판례가 존재한다.

 

불법적인 물건의 절도

비슷하게 두 견해가 충돌되는 상황으로 "불법적인 물건도 절도가 가능한가"가 존재한다.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타인 소유물을 절취할때 이때 점유, 소유 자체가 불법인 경우에도 가능한가?

 

점유, 소유 자체가 불법인 경우 절도를 인정한다면 곧 불법물이 "재물"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불법물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인정해야 하는 견해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불법적인 물건에 대해서 절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회가 혼란스러워 질 것이다. 매일 매일 마약 쟁탈전이 벌여질 수도 있다.

이에 '절도' 행위 자체가 평온을 깨뜨리는 행위임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위 경우에 대해서 대법원에서는 절도행위를 인정함과 동시에 소지에 대해 별개의 사건으로 보는 견해를 보인다.

 

살인청부사기

갑이 을에게 A를 죽여주는 대신 1억을 주겠다고 요구했고, 갑이 1억원을 주자 을은 그대로 잠적했다.

위와 같은 경우 을에게 사기죄를 물을 수 있을까?

 

민법의 경우, 반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조항이 있다. 또한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할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민법상으론, 애초에 갑과 을이 한 청부살인계약도 무효이고, 갑이 을에게 준 1억원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민법의 관점에서는, 애초에 갑과 을의 계약이 무효이기 때문에, 을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고, 돈도 돌려줄 필요가 없으므로 사기죄가 성립될 수 없다.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제746조(불법원인급여)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하지만, 이전 절도의 관점처럼 불법적인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사기'는 남을 기망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행위 자체를 의미하고 충분히 현실을 혼란스럽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처벌해야 한다고 볼수도 있다.

위 경우에 대해 대법원은 사기를 인정하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절도 VS 사기

절도는 "절취"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상대방의 의사의 반해서 내가 취하는 것이다.

반대로 사기는 상대방을 기망시켜서 재물을 얻는 것이다.

제347조(사기) ①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전혀 다른 내용 같지만, 헷갈리는 사건들이 존재한다.

1) 손님인척 방문한 을 -> 사장 갑에게 반지를 착용해본다고 받음 -> 그대로 도주
2) 갑 결혼식장에서 축의금 받는 사람인척 하는 을 -> 축의금 받고 그대로 도주

다음의 두 상황을 살펴보자. 위 두 경우 모두 갑이 무언가 속이는 행위를 했고, 피해자가 스스로 재물을 넘겨줬기 때문에 사기로 봐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사실 둘 다 절도에 해당한다.

사기죄의 구성요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가해자)타인 기망 -> (피해자) 착오 -> 처분행위 -> (가해자) 재산상의 이득

단순히 타인을 기망하고 재산상의 이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처분행위"를 스스로 하게끔 "착오"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처분행위는 그냥 물건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물건의 소유권을 넘기는 행위를 말한다.

1) 의 경우, 을이 착용해보는 척 "속이긴" 했지만, 갑이 을에게 반지를 준 건 가지라고 준게 아니라 착용해보라고 준 것이다.

따라서 여전히 타인 점유의 타인 재산을 그의 의사에 반하여 내가 취했기 때문에 절도이다.

2) 역시, 을에게 축의금을 주는 사람들은 갑에게 전달하라고 준 것이지 ,을에게 주는 "처분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여전히 타인 점유의 타인 재산을 의사에 반해서 취한 절도이다.

 

1) 가짜 동전으로 음료수 뽑아 먹기
2) 남의 신용카드로 ATML에서 현금 인출

그렇다면 기계를 상대로 살펴보자. 자판기가 가짜 동전에게 기망당해 착오가 발생했다 할 수 있나?

진짜 동전을 넣었을때만 음료수를 뽑으라는건 인간의 입장이다.

자판기의 입장에서는, 가짜 동전이던 진짜 동전이던 검증 알고리즘을 적용했을 때 통과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음료수를 반납한 것이다. 한마디로 자판기는 자기 일을 제대로 한 것이다.

따라서 위 경우에서 "착오"를 불러일으키는 "기망"행위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타인 점유 의 타인 재물을 취한 절도죄로 인정된다.

2) 역시 ATM의 입장에서는 들어온 신용카드에 따른 돈을 인출한 것이기 때문에, "기망"이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절도죄로 인정된다.

물론 현재는 편의시설 부정 이용죄가 추가로 존재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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